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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미스테리한 자연산 전복 도난 사건


- 7월 9일 오전 10시

일요일 아침...
거실에서 들려오는 어머니와 동생의 흥분한 목소리에 잠을 깨었습니다.
늦잠 좀 자 보려고 하는데 , 무언가 심심치 않은 일이 생긴 모양입니다.



- 7월 8일 오후 9시
지난 밤에 지인분께서 어머니께 드린다고 제주도에서 자연산 전복을 가져다 주셨습니다.
어머니가 몸이 좋지 않으시니 전복이 원기를 회복하는데 도움이 된다하여 전복을 자주
드시고 계십니다.  자연산 전복이니 훨씬 몸에 좋을 것이라고 살아서 속살을 꼬물거리는
놈으로 2마리를 공수해 오셨더군요. 아들들도 주지 말고 꼭 어머니만 드셔야 된다고
신신당부를 하십니다.

하긴... 그분도 연로하신 어머니도 드리지 않고 저희 어머니께 드리는 전복이니 얼마나
마음을 쓰신 건가요?

자연산 전복은, 특히 싸이즈가 저리 큰놈은 돈이 있어도 구하기 힘들다고 합니다.



전복을 다듬어 다음날 전복죽 끓일 준비를 다 마치고 저희 가족 모두 잠이 들었습니다.

위는 귀하다는 자연산 전복의 사진과 마트산 전복의 비교 사진으로 마트에서 파는 전복과
비교하면 확연히 사이즈가 다릅니다.




- 7월 9일 오전 9시 30분
잠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들어가신 어머니는 다듬어 놓은 전복이 사라진 것을 발견
하셨습니다. 누군가가 설겆이를 다 해놓고 부엌을 싹 정리 해 놓았다고 하는데, 전복만
사라진 것입니다. 혹시 냉장고나 다른 곳에 놔두지 않았나 싶어 모든 곳을 다 찾아 보았지만 
전복은 흔적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저희 집은 어머니가 몸이 안좋으셔 도움 주시기 위해 출입하시는 분들이 몇분 있습니다.
그래서 몇몇 분들은 현관 비밀번호를 알고 있기 때문에  그 분들은 누구든 출입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이 때 바로 용의자 한 명이 떠오릅니다.




용의자 1.
저희 집에서 불과 100m 떨어진 곳에 사시는 작은 고모. 일주일에 4회 이상 방문하여 저희
집안 일을 도와주십니다. 아침 일찍 저희 집에 올 사람이 있다면 99% 작은 고모이지요.
전복은 저희 어머니를 위한 음식인 것을 알고 있으니, 자신이 먹기 위해 가져 갔을리는 없고
아침 잠결에 음식물 쓰레기로 버렸을 것이란 가정을 해 봅니다. 다만, 작은고모도 통영의
바닷가 출신이라 전복 다듬어 놓은 것을 버릴 인물은 아닌데...

하여튼 우리집에 다녀 갈 만한 인물은 작은 고모일 가능성이 가장 큰 상황입니다.



전화를 걸어 보지만 통화연결이 되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항암치료 약물로 인해 굉장히
민감해져 계십니다.  전복을 가져다 준 지인에게 너무 미안해 하시면서 작은 고모를 단단히
벼르고 계시네요.




- 7월 9일 오후 2시
'삑삑삑삑" 소리와 함께 작은고모가 들어옵니다. 초인종도 누르지 않고 자유로이 출입할
만큼 가까운 고모입니다.

작은 고모는 들어오자 마자 따가운 눈초리와 추긍을 받습니다.
"고모 , 혹시 오늘 아침에 우리집 왔다 갔어?"

하지만 작은 고모는 예상과 달리 저희 집에 다녀간 적이 없다고 합니다.
헐... 당연히 작은 고모일 줄 알았는데....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작은 고모도 어이없어
하시네요. 자신이 생각해도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 본인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작은 고모는 이런 거짓말을 하거나 다른 속이 있는 분이 아니기 때문에 고모가 아니라 하면
아닙니다. 하지만 정황상 계속 작은 고모를 의심하게 됩니다.



비밀 번호를 알고 있는 다른 분들은 저희 집에서 먼 곳에 살기 때문에 일요일 아침 일찍 다녀갈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어머니는 그분들께 전화를 걸어 아침에 다녀간 적이
없는지 확인을 해 봅니다. 그러나 저희 집을 다녀간 분은 아무도 없습니다...



사건은 점점 오리무중에 빠져듭니다.
다른 물건이 없어진것도 없고, 부엌 정리가 깔끔하게 정리되었던 점 등을 미루어 저희 집 현관
비밀번호를 알고 있는 몇몇 분들 중 한 사람이 틀림없는데... 아무도 다녀간 사람이 없다하고...



이 때 용의자 2가 떠오릅니다.


용의자 2.
저희 어머니의 숙모. 저희는 숙모 할머니라 부르는 분인데, 어머니와 나이차가 많지 않아
자매처럼 지내시는 분입니다.  운전을 좋아하시고 돌아다니시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분 딸의
집을 자주 드나드시는데 그 동선 중에 저희 집이 있습니다. 게다가 거짓말도 잘하는 편이라
하네요. 아마 새벽녘에 딸 집에 다녀오다 저희 집에 들린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전화로 물어 봤는데,,, 저희 집에 들린 일은 없다고 합니다.






- 7월 9일 오후 2시30분
아하!! CCTV 를 확인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희 집은 18층이고 누구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왔을테니 CCTV 에 아는 분이 찍혀 있다면 그 사람이 범인으로 간주하면 되겠습니다.
어머니는 지난 새벽 4시까지 깨어 있었고, 그 이후 9시 30분까지 주무셨다고 하니 그 시간대만
확인하면 될 것 같습니다.


관리사무소에 가서 대충 자초지종을 이야기 하고 엘리베이터 CCTV를 볼 수 없는지 문의하자,
아파트에 거주하는 사람임을 증빙할 수 있으면 보여주겠다고 합니다.
입주자 등록증을 제출하고 CCTV 감시실로 고~~




VHS 테이프를 빨리 감기로 돌려서 보는 건 줄 알았는데... 요새는 모두 디지털이네요~ .
동영상 아래의 시간대 BAR에 점이 찍혀 있는데 그 점 찍힌 시간대에만 사람이 탑승하여
촬영된 것이라 그 부분만 보면 된답니다.
강력범죄를 수사하는 형사의 심정으로 괜히 들뜨기 시작합니다.
예리한 매의 눈을 뜨고 30분 정도에 걸쳐 CCTV 를 살펴보았는데...




지인들 중 아무도 CCTV에 찍힌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 용의 선상에 제외된 것입니다....





...............이 때 제 3의 용의자가 떠오릅니다..

용의자 3.
저희 어머니. 어머니가  약기운에 어딘가 처리해 놓고 기억을 못하시는 건 아닌지...
약물치료 때문에 이런 것을 기억하지 못할 정도라면 이건 좀 심각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와 비슷한 행동을 하셨던 적도 없고, 만약 어머니가 처리하신 것이라면 ,
엘리베이터 CCTV 에 어머니가 등장했어야 하는 것이죠. 집안에서 처리하셨다면 어디선가
전복의 잔해라도 나와야 하는데, 그 어디에도 없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어머니도 쉽게 용의자의 신세를 벗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놈의 전복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요?

1. 완전 범죄를 노린 지인이 엘리베이터 탑승을 하지 않고 새벽에 18층을 오르내린
것이다.


2. 제 동생이 새벽녘에 다 먹어치우고 오리발 내밀고 있다.
 - 제 동생은 이런 해산물을 썩 좋아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어머니 것을 먹어치운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죠. 오히려 제가 의심을 받고 있다는...ㅠㅜ 저.. 뒤비 자느라 바빠서... 
99% 범인 아닙니다.

3. 이게 가장 유력한 가설입니다. 바로바로... 전복각시(?). 우렁각시 처럼 집안일 해놓고
쏙 숨는다는 전설의 처자... 영험한 자연산 전복에도 그런 각시 하나 숨어 있었던 것
아닐까요?  좀 더 자주 나타나 주면 안되겠니? 각시야.? ㅠㅜ




1주일이 지난 지금... 사건은 이대로 묻히는 것 같습니다. 정말 한여름의 미스테리한 사건...
제보를 받습니다.
주변에 전복자시고 힘을 주체하지 못하는 분이 계시면 댓글로 제보 부탁드립니다.


덧붙임
강아지나 고양이의 소행으로 의심하시는 분들도 많으시네요~
전복 내용물만 사라진 것이 아니라, 전복이 담겨 있던 바구니는 설겆이가 되어 있고 담겨있던 전복만
사라진 상황이랍니다.
그러니, 강아지나 고양이의 소행은 아니랍니다~^^